歸天하신 아버지
한번도 그렇게 아버지와 이별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중환자실에서 아버지와 헤어져야만 했다.
예전부터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는 것을 하늘이 무너지는 것에 비유했다.
내가 겪으니 그 말이 맞다. 정말 그랬다.
중환자실 복도에서 목 놓아 울어도 그 비통한 마음은.....표현할 길이 없다.
아버지를 산에 모시는 날은 올해 들어 가장 기온이 낮았다.
그래서 아버지만 두고 돌아서서 오는 길이 멀고도 멀었다.
집근처 작은 포교당에 아버지를 모시고 7일마다 재를 올렸다.
그렇게 7주가 지나 49재를 올리는 날, 어머니는 아주 많이 우셨다.
그래도 아버지 친구분들과 친척들이 많이 오셔서 마음에 위안이 되었다.
장례를 치를 때, 산소에 모실 때, 49재 때....
먼길마다 하지 않고 오신 분들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고마움이 우러나왔다.
49재 전에 어머니, 막내동생과 셋이서 아버지께 다녀왔다.
큰댁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큰아버지와 사촌들이 시간이 될 때마다 가셨던 모양이다.
산소의 흙을 다지고 보살핀 흔적이 있어서 거의 비슷한 시기에 자리 잡은 옆의 봉분과 비교되었다.
이것 역시 감사한 일이다.
산소에 갔더니 딸기 세알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누가 놓은 것인지 궁금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사촌 큰오빠가
아버지께 들러 올해 딴 첫딸기를 드렸던 것이다. 고마워요.
아버지는 식구들 꿈에 번갈아 나오셨다.
49재 후 내 꿈에 보인 아버지는 평소의 모습 그대로였다.
아버지께서 귀천하신지 11주가 되었다.
아버지의 부재를 실감하려면 아직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이젠 3년 상을 치르지는 않는다.
그러나 마음의 상복을 입는 심상心喪은 3년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만큼 시간이 지나야 조금 나아질지도 모르겠다는...
4일엔 청명, 한식이라서 하루 앞당겨 아버지께 다녀왔고
다음 주 17일엔 아버지 생신이라서 갈 예정이다.
참 많이 보고 싶은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