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9년 7월 19일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56㎞ 떨어진 항구도시 로제타. 백인 병사들이 술렁거리며 모였습니다. 이들은 맘루크 왕조의 압제에서부터 이집트 민중을 구한다는 명분으로 이집트를 침공한 프랑스 군대의 병사였습니다. 사가(史家)들은 프랑스의 나폴레옹 군대가 영국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려고 이집트를 전략적 요충지로 확보한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는 가난 속에서도 형의 도움을 받으며 자나 깨나 상형문자 연구에 매달립니다. 그러다 불현듯 이집트 상형문자는 중국 한자처럼 뜻을 나타낸다는 기존의 가정에 의문을 품습니다. 상형문자가 뜻뿐 아니라 소리를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출처: 코메디닷컴(kormedi.com)의 건강편지 제 517호 (2010-07-19일자)
건강편지의 글은 샹폴리옹에게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래서 건강편지의 원제목은 <상형문자는 표의문자라는 상식을 깬 천재>였지요. 물론 그의 노력과 업적을 폄하할 생각은 조금도 없지만 로제타 스톤은 원래 이집트의 문화유물인데 영국과 프랑스가 싸우고 누가 이기느냐에 따라 전리품으로 이리저리 옮겨지는 것이 마플에게는 더 마음 아펐습니다.
나라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 사람도 그 땅의 동물도 오랜 기간 지켜온 문화도 그 민족의 뜻에 따라 할 수 있는 것은 없으니까요. 이집트에 들어온 서양인들은 미이라를 가져다 이벤트용으로 사용했지요. 사람들을 불러모아 놓고 미이라 붕대풀기 등을 하면서...
또, 고양이 미이라 등 동물 미이라 뿐만 아니라 사람의 미이라를 기차의 땔감으로 쓰기도 했습니다.
로제타 스톤에 대한 글과 사진은 많습니다. 다만 요새는 로제타 스톤으로 검색을 하니 영어 학습에 대한 것만 잔뜩 나오더군요. 아마 로제타 스톤의 해석으로 이집트 상형문자에 대한 수수께끼가 풀리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에 외국어 학습에 획기적인....이런 의미로 붙인 이름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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