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문화

한국의 전통문양 - 호랑이

MissJaneMarple 2007. 3. 17. 15:40

호랑이 虎 : 산신. 보호자. 위력. 권세. 보은. 주재자. 심판자. 벽사

 



    

 

 


산이 많은 우리나라에서 호랑이는 특별한 존재였다. 그는 두려움의 대상이자 경외의 대상이었다.
인간들의 상상력은 종종 동물에게 인격을 부여하곤 했지만, 호랑이에게는 자신들보다 높은 위치,

신격을 부여했다. 그리고 그를 산신(山神), 산령(山靈), 산군(山君)이라 부르며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다.

용이 국가창업의 시조로 자주 등장한다면 호랑이는 그 조력자로 빈번히 모습을 드러내곤 한다.
한 예로 「삼국유사」에는 후백제 견훤의 어머니가 밥을 내어가기 위해 그를 나무 아래에

홀로 두었을 때, 범이 와서 젖을 먹여 돌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산신의 위세를 빌어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는 것이다.

아무리 호랑이가 곰보다 인내심이 떨어지는 동물이라고 해도, 우리 백성은 곰보다는

호랑이의 민족이었다. 호랑이의 흔적은 선사시대 암각화와 청동기에서부터 시작한다.
호랑이에게 신격을 부여한 이른 예로는 고구려 고분벽화의 백호(白虎)와 통일신라시대 능묘 조각에서

유행한 12지신 중의 호랑이상을 들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친숙한 것은 산신령 앞에 엎드리고 있는 호랑이의 모습이다.
‘산의 군자인 호랑이는 엎드려 있어도 모든 헤아림이 그 속에 있다(山君 伏 知在商量)’고 했다.

여기서 호랑이는 산신의 뜻을 받드는 사자, 혹은 산신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런 호랑이의 위엄을 빌려 사악하고 잡스러운 기운을 쫓아내고 삶의 평안을 얻기를 바랬다.
그래서 삼재(三災)를 막는 부적이나 새해에 주고 받는 세화(歲畵)에는 꼭 호랑이를 그려 넣었으며,

단오에는 쑥으로 호랑이 모습을 만들었다.
삼재란 풍(風), 수(水), 화(火)에 의한 재난을 말하는데 굳이 태풍이나 화재와 같은 물리적인 재난뿐 아니라 사람의 마음으로 파고들어 병을 일으키는 심화(心火), 풍병(風病), 수종(水腫)도 함께 뜻한다. 이런 부적에 호랑이가 등장할 때에는 주로 우렁차게 포효하는 모습이나 정면을 노려보는 자세를 취한다. 귀신을 겁주는 것이다.

때로 호랑이 뒤로 대나무가 등장하기도 하는데 이 역시 벽사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대나무를 불에 던져 터지는 소리로 귀신을 쫓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또한 집안에 호랑이 그림을 걸어두면 높은 관직에 오를 자식을 얻을 수 있다고 믿기도 했다.
그 흔한 감기가 걸려도 ‘범 왔다’라고 외쳐 병을 쫓은 걸 보면, 호랑이가 신통하긴 했나보다.
한편 산 속에서는 절대로 ‘호랑이’나 ‘범’이란 말을 꺼내지 않았다고 한다.

말이 씨가 되어 ‘호랑이’란 말을 하면 실제로 호랑이가 나타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대신 산길에 환영 받던 글귀는 「중용(中庸)」의 서문이었다.
또 범이 따라 올 때 일부러 코피를 내어 흘리거나 돌멩이를 뒤집어 놓으면 범이 물러간다는 속신도 전해진다.

한반도에 호랑이가 살기 시작한 시기는 수십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호랑이 화석은 평양 상원 검은모루 유적지에서 출토된 것으로 연대는 약 55만년 전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한 이처럼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호랑이는 민담 속에서 다채로운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야기 속에서 호랑이는 크게 나쁜 호랑이와 착한 호랑이, 그리고 어리석은 호랑이로 나눠볼 수 있는데, 일월신화에서 오누이를 쫓아 동아줄을 타고 올라가는 호랑이가 나쁜 호랑이의 전형이라면 [김현감호] 설화에 등장하는 호랑이는 자신의 몸을 바쳐 보은하는 착한 호랑이이다.
그리고 어리석은 호랑이라면 곶감에 놀라 도망간 유명한 녀석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항상 사람들 곁에 살며 때로는 두려움을, 때로는 행복을, 그리고 웃음을 선사해주었던 호랑이가 한반도에서 본격적으로 멸종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일제시대 때부터이다.
조선총독부 공식기록에 의하면 1917년부터 25년 동안 무려 108마리의 호랑이와 670여 마리의 표범이 포획되었다고 한다. 이 기록에는 러시아의 유명한 사냥꾼 양코프스키가 1930년대에 잡은 수십 마리의 호랑이가 빠져 있어 일제 때 실제로 죽어나간 호랑이는 훨씬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에서는 지난 93년 함경북도 낭림산에서 호랑이 가족 3마리를 포획한 것이 마지막 공식 기록으로 남아 있다.

조선 후기 박지원의 소설 [호질(虎叱)]에는 호랑이의 입을 빌어 인간 사회의 추함을 꾸짖는 장면이 나온다.

“유(儒)란 것은 유(諛)라 하더니 과연 그렇구나... 장수되기 위해 아내를 죽이는 일까지도 있은 즉, 이러고도 인륜의 도를 논할 수 있을 것인가.”

이제 호랑이가 사라지고 없는 지금, 사람들은 더 이상 동물원에나 있는 호랑이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우리에겐 기껏해야 호돌이가 있을 뿐이다.

 


 

 

        호랑이 부적. 조선시대.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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