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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백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 / 조용헌

MissJaneMarple 2007. 2. 28. 02:34

 

조용헌은 어떤 기준으로 명문가를 말하는가?
그는 가장 보편적인 조건은 그 집 선조 또는 집안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느냐(How to live)' 하는

문제로 귀결된다고 하였다. 이 문장을 봤을 때 ‘아하!’했다. 그래, 맞다.

한 집안도 그렇고, 개인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살고 있는가, 어떻게 살아 왔는가..... 정말 중요한 문제다. 그리고 조용헌은 그 집안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파악하는 실질적인 자료로 고택古宅을 꼽으면서 전통 고택을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는 집을 명문가로 판단하였다. 고택을 유지하고 있는 집안엔 대개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

첫째, 역사성이다. 역사를 의식하는 사람과 의식하지 않는 사람의 행동은 다를 수밖에 없다.
둘째, 도덕성이다. 고택을 유지하고 있는 집안들은 나름대로 철학과 신념이 있다.

그 철학과 신념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선비정신’이라고 하겠다.
자신에게 엄격한 반면 타인에게 관대한 정신이 바로 선비정신이다.
셋째, 인물이다. 명문 고택을 유지하는 집안들은 과거와 현재에 걸쳐 인물들을 배출하였다.
마지막으로 조용헌은 바람과 물의 원리를 추가한다. 즉 풍수의 영향을 말한다.

풍수는 후손들 복 받게 해달라는 발복發福 기원이 전부는 아니다.

풍수의 핵심은 자연과 인공의 조화에 있다.

조용헌이 보기에 이들 고택들은 되도록 땅의 기운인 지령地靈을 훼손하지 않고 집을 지었다.

이 책을 통해 출판사 열화당이 강릉 선교장에 있는 열화당에서 이름을 가져온 것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열화당 사장은 고등학교 때까지 선교장에서 다녔다고 한다.
책에 나온 모든 가문이 인상적이고 때론 감동이었지만 그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경주 최 부잣집이다.
부자가 3대 넘기기 어렵다는 말을 하는데 최 부잣집은 12대 동안 만석을 한 집안이었다.
최 부잣집에는 대대로 내려오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말라.
둘째, 재산은 만석 이상 모으지 말라.
셋째, 과객過客을 후하게 대접하라.
넷째, 흉년기에는 남의 논밭을 매입하지 말라.
다섯째, 최씨 가문 며느리들은 시집온 후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어라.
여섯째,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12대를 이어온 최씨 집안의 재물 대부분이 일제강점기에 독립자금으로 보내지고 나중엔 종손이 만석꾼에서 빚쟁이로 전락한다. 또 어찌어찌 찾은 재산의 일부도 영남대 재단으로 들어간다.

예전에 답사를 다니면서 향교나 종갓집에 갔을 때 그 분들은 성씨와 본관을 묻곤 하셨다.
내가 대답하면 그런 본관도 있나....하는 얼굴을 해서 나를 몹시 속상하게 만들었다.
그때 결심한 것이 ‘자랑스런 선조는 아니더라도 못난 조상은 되지 말아야겠다’는 거였다.
그리고 그 분들의 그런 질문이 불편했기에 툴툴거렸다. 그 분들이 나를 업수이 여기거나 겉으로 으스대는 행동을 한 것은 아니다. 나 혼자, 덜 자란 마음에 그런 생각을 한 거니까....

이 책을 읽으면서 다른 책도 하나 더 보았는데 {천년의 전통과 맥을 이어가는 명문 종가 이야기/ 이연자 지음} 이라는 책이었다. 그런데 이연자 선생의 책에 나의 본관, xxx씨의 종가가 나와 있는 것이 아닌가.
참......나도 잘 모른 거였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했던 생각이 변한 것도 아니고, 갑자기 신분 상승한 기분이 드는 것도 아니다.

다만 혼자 부끄러워했었다.

앗- 얘기가 길어졌네....^^;;
아래는 조용헌 교수가 서문 말미에 쓴 내용이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싶어서 옮겨 놓는다.

“어느 나라이든지 간에 상류사회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철학과 도덕성을 갖춘 상류사회가 존재할수록 그 사회는 안정된 사회이고, 아울러 사회 구성원 전체의 삶의 질이 올라간다. 한국사회도 이제 부도덕한 졸부의 시대가 가고 제대로 된 상류층이 나와야 할 시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조용헌, 서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