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종가에는 ‘특별한 것’이 있다 |
입력: 2005년 11월 15일 17:41: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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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가(宗家)가 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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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진성이씨 종가의 사랑채. | 수백년 동안 이어내려온 명문 종가의 교육·음식 등을 주제로 한 책 출간이 잇따르는가 하면, 종택들을 둘러보는 여행 상품도 생겨나고 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몇년 전부터 학봉 김성일 종가를 비롯한 명문 종가의 생활문화를 조사·연구, ‘종가의 제례와 음식’ 시리즈를 출간중이다. 핵가족 시대, 호주제마저 폐지 위기를 맞고 있는 21세기에 왜 종가를 주목하는가. 그것은 종가가 우리 문화의 근간이 되어왔던 유교문화의 뿌리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상의 신주를 모신 고택의 사당에서는 해마다 ‘불천위(不遷位)’ 제사가 봉행되고, 수백년 동안 종부·종손들이 지켜온 종가의 가훈과 예절은 현대인들에게 바른 삶의 자세를 일깨운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가를 일컬어 ‘전통문화의 마지막 보루’라고들 한다.
전통이 급속히 해체되는 가운데 종가의 특별한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전시회가 열린다. 서울 신문로에 위치한 서울역사박물관이 19일부터 개최하는 ‘옛 종가를 찾아서’전. 경북 안동의 진성이씨 대종가에서 기증한 2,500여건의 유물 가운데 110여점을 엄선해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종가의 역사와 문화는 물론 그곳에 깃든 정신세계까지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자리다.
유물을 기증한 진성이씨는 조선 최고의 유학자 퇴계 이황을 배출한 명가. 대종가는 이황의 큰집으로 15세기 초반 안동 주촌(周村:현 안동시 와룡면 주하리)에 정착한 이후 지금까지 그곳에서 전통을 지켜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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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부터 조선 세종대의 관리 임명장, 담배갑, 성주단지. | 전시에는 진성이씨 종가에서 600년간 소장되어온 귀중 유물들이 대거 출품된다. 눈에 띄는 유물은 안동 진성이씨의 중흥조로서 세종 때 선산부사를 지낸 이정(李禎)의 ‘선산부사 교지’(敎旨:관리 임명장). ‘국왕행보(國王行寶)’라는 세종 임금의 직인이 찍혀 있는 조선 초기의 고문서이다. 또 진성이씨 족보, 진성이씨 세전유록 등의 족보류와 종손 이정회가 1577년부터 1612년까지 30년 넘게 쓴 ‘송간일기’와 1590년쯤에 작성된 당시 중앙 관리들의 명부인 ‘관안(官案)’, 퇴계 이황이 이정회에게 보낸 편지 등도 주목된다.
이중 1600년에 간행된 진성이씨 족보는 ‘안동권씨 성화보’(1476), ‘문화유씨 가정보’(1565)와 함께 현존 족보 가운데 시기가 가장 오래된 것 중의 하나다. 또 송간일기는 이정회가 횡성현감 재임시 겪은 임진왜란의 상황을 담고 있어 임란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종가의 경제생활을 엿볼 수 있는 노비문서·토지문서·호구단자 등의 고문서, 백자연적·서류함·담뱃갑 등 종손들의 생활용품, 종부들의 손때가 밴 성부단지, 삼신바가지, 용단지 등도 소개된다.
전시는 ‘사랑방과 사대부’, ‘안방과 부녀자’, ‘제사와 의례생활’ 등 세 주제로 나뉘어 종가의 생활을 보여준다. 전시장 역시 안동 주촌의 진성이씨 종택 구조를 본떠 입체적으로 꾸몄다. ‘16~17세기 진성이씨 가문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이번 전시를 기획한 김문택 학예사는 “600여년간 지속되어온 진성이씨 종가의 소장 유물을 통해 종가의 역사와 문화를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꾸몄다”고 말했다. (02)724-0161
〈조운찬기자 sid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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