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는 오랜 역사와 찬란한 색채의 전통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조선시대에 이르러 유학과 사대주의의 영향으로 중국화에 밀려나고 말았습니다. 오방색을 근원으로 고구려 벽화와 고려 불화로 이어지던 우리의 찬연한 색채 문화는 수묵 담채화나 문인화에 밀려 왕실의 어진이나 영정화와 같이 은밀한 영역으로 축소되었는가 하면, 민화와 같은 대중예술로 성격 전환이 되면서 문화의 가치가 적잖이 폄하되었던 것이지요.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명분에 사로잡힌 남정네들에 의해 뒤로 밀려난 우리의 찬란한 색채문화가 흔연히 스며들어 꽃을 피운 곳이 있었다는 것이지요. 그곳이 바로 규방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우리의 어머니들이란 예술과는 전혀 상관없이 그저 단단한 손끝으로 야무진 살림을 해내고 정성을 다해 가족을 돌보는 데 평생을 바친 분들이라고 생각하기 쉽지요.
하지만 우리의 어머니들이 어떤 분들입니까. 하루 종일 종종 거리며 고단한 일상을 마친 뒤에도 늦은 밤 작은 호롱불 앞에 오롯이 앉아 현란한 색채의 실을 꿰어 오색찬란한 수를 놓고, 아름다운 오방색 천 조각을 이어 우아하고 아름다운 조각보를 만드시던 분들입니다. 자신의 내면 속에서 살아 숨쉬는 불꽃 같은 정열과 희망을 말 그대로 실낱같은 수실에 엮어 한땀 한땀 바느질로 형상화하고, 색색의 조각에 실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우아한 조각보로 꾸며낸 분들이지요. 저의 종이부인이나 보자기부인 시리즈는 바로 이와 같은 우리의 어머니들을 위해 꾸미는 영정이요, 그녀들에게 바치는 경배의 제사입니다."
출처 : <오리엔탈이미지>19호 / 글, 강선영 / 사진, 최영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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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의 전통이 조선시대에 이르러 유학과 사대주의의 영향으로 중국화에 밀려나고 말았다"는 정종미 선생의 말에는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오방색의 의미나 색채의 상징성은 조선시대라고 해서 줄어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유학의 이념과 결합하여 우리 문화 곳곳에 남아있고 그것은 현재 진행형이기도 하다. 한양의 사대문이 가지고 있는 의미도 그렇고, 이름의 돌림자도 마찬가지다.
정종미 선생의 말 중 '성격 전환'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시대가 지나고 새로운 이념을 받아들였을 때는 문화의 표현 양식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어쩌면 그게 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그렇게 우리 문화의 원형은 시대에 따라 성격과 모습을 달리하면서 표현되어졌다고 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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