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운 녀석들

흩어진 마당이네

MissJaneMarple 2010. 1. 21. 03:41

 

지독하게 추워서 기온이 영하 16도-17도까지 내려간 그날 밤, 마당이네에게 사료를 주기 위해 갔습니다.

그런데 이상했어요.

가까이 가면 어린 녀석들이 상자 안에서 튀어나오고 어미인 삼색이는 사료를 빨리 달라는 듯이

제 곁을 맴돌았는데 너무 고요한 겁니다.

가까이 가니 회색이가 상자에 뚫어둔 구멍에 몸을 반쯤 내 놓은 채 죽어 있더군요.

.......

 

어린 녀석은 벌써 몸이 다 굳어 있었는데 그게 추위 때문인지 죽은지 좀 지나서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어찌해야 할지.....그냥 서 있었습니다.

언 땅을 팔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 상태로 둘 수도 없고..

일단 사료와 물을 놓고 주변에서 상자를 구해 회색이를 넣었습니다.

그렇게 회색이가 들어있는 상자를 들고 또 서 있었습니다.

주변을 빙빙 돌다가 결국 회색이가 있는 상자를 사람들이 쓰레기 봉투를 놓는 곳에 내려 놓았습니다.

미안하다, 너를 이렇게 두어서 미안하다.

다음엔 춥지 않고 배고프지 않게 태어나렴.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태어나렴.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손과 다리가 덜덜 떨렸습니다.

흩어진 마당이네 다른 녀석들이 걱정되고 궁금해서 돌아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습니다.

 

다음날, 아직 회색이가 그 상자 안에 있다면 제대로 수습해주고 싶어서 수건과 비닐 등을 준비해서

나갔는데 이미 치워져 있었습니다. 그게 또 마음을 무겁게 했습니다.

 

사료는 줄어들어 있었지만 하루면 바닥을 보이던, 마당이네 가족들이 다 모여 있던 때와는 달랐습니다.

전에 TV 동물농장을 보니까 동물과 대화를 나누는 하이디가 같이 지내던 개의 죽음을 목격한 다른 개들의 이상행동을 대화로 풀어내더군요. 늘 같이 있던 달콩이(죽은 개)가 죽는 모습을 지켜보았던 다른 녀석들은 공포를 느꼈고 자기들도 그렇게 될까봐 무서워 했습니다.

아마 마당이네도 그렇지 않을까요? 아픈 기억이 있는 그곳을 떠났지만 먹을 것을 구할 수 없기 때문에 사료를 먹을 때만 잠시 머무는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너덜거리는 상자를 치우고 새롭게 상자를 마련해 주면 마당이네가 다시 올까 싶어서 월요일(18일)에 전보다 크고 튼튼하게 상자를 만들어서 갔는데.....

모든 것이 다 치워져 있었습니다. 사료와 물그릇도 없었습니다.

처음 마당이네를 위해서 상자를 마련해 주셨던 분도 회색이의 죽음과 흩어진 녀석들의 빈자리가 아팠을지도 모릅니다. 또 어쩌면 주변에서 싫은 소리를 했을지도 모르구요. 그곳은 여러 사람들이 왕래하는 곳이니까요.

어찌할까....하다가 일단 만들어간 상자와 사료를 두고 왔습니다.

 

그리고 조금 전에 사료를 들고 갔는데 짐작한대로 또 치워져 있었습니다.

이미 이런 일이 있을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집에서 편지를 썼습니다.

상자는 치우더라도 사료를 주면 안 되겠냐고, 꼭 부탁드린다고....

사료그릇 밑에 비닐로 그 편지를 싸서 두었습니다.

또다시 치워진다면 그때는 어쩔 수 없는거지요.

 

사료를 두고 그 골목을 빠져 나오는데 젖소무늬의 고양이와 노란무늬의 고양이가 사료쪽을 보고 있었습니다.

젖소무늬 녀석은 회색이 아빠입니다.

어서 가 밥 먹어...라고 했더니 제 얼굴을 빤히 쳐다봅니다.

다른 녀석들도 근처에 있을 싶어서 돌아보았는데 제 눈에 띄지는 않더군요.

사료그릇이 또 치워지기 전에 조금이라도 먹길 바라며......

 

 

젖소무늬의 아빠와 그 옆의 회색이.

다른 두 녀석은 물을 먹고 있는데 회색이는 고개를 돌려 아빠에게 뭔가 말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말이 뭔지 몰라도 아빠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네요.

이 사진을 찍은 며칠 후, 회색이는 무지개 다리를 건넌 것입니다.

남은 마당이네 다른 가족들이 무사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