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문화

한국의 타이포 유산2 - 백수백복도(百壽百福圖)

MissJaneMarple 2007. 3. 25. 03:32

 

예로부터 부귀와 장수를 비는 의미로 수(壽)와 복(福) 자를 옷이나 장롱, 심지어 떡살에 새겨넣곤 했다. 수 놓아진 경우에는 해서체나 초서체가 많고 그릇이나 기물, 기와 등 공예품에서는 전서체나 도안체로 된 글자가 많은데 이러한 수, 복자 문양의 전통은 쌍희(雙喜) 자 문양과 함께 조선시대에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 사진의 백수백복도는 이러한 수, 복 문양이 문자도의 형태로 발전한 것으로서 주로 병풍 그림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백수백복도란 말 그대로 백 개의 '수' 자와 백 개의 '복' 자를 쓴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결과는 보는 바와 같이 '쓴 것에 불과하지' 않다. 그 많은 같은 글자들이 앞서 부적과 같이 어느 하나 같은 모양이 없으며 어느 하나 상상력이 발휘되지 않은 것이 없다. 때로는 나무를, 때로는 구름을, 또 물과 별을 닮은 형태를 그려내는 붓놀림에 거칠 것이 없어 보인다. 하나의 문자를 표현하는 데 이만한 자유를 누리기란 현대에도 쉽지 않은 일이다.

 

어떤 대상을 표현하려 할 때, 우리의 머리 속에는 고정관념이라는 것이 작용한다.
좋게 말하면 표현의 적절한 기재로 사용할 수 있는 그 틀은 동시에 구속이기도 하다. 또 사회는 그가 속한 개인이 그 틀을 벗어나는 것을 좀처럼 반기지 않는 법이다. 더욱이 하나의 약속이자 사회 전체의 암묵적인 통제를 받고 있는 문자에 있어서는 더하다. 한글 글꼴을 디자인할 때, 우리는 한글의 원리를 따라야 하고 글자가 결합되는 방법을 숙지해야 한다. 그것이 전제되지 않고는 글자로서의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은 그로부터 벗어나 보는 것은 어떨까? 적어도 위의 수와 복 자를 쓴 이는 그런 규칙으로부터 자유로워 보인다. 글자와 문양은 다르다고 할지 모르나 문양 역시 창작물이기 이전에 그 사회 구성원들의 집단적인 가치와 감정이 상징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형태이며 역시 일정한 사회적인 고정관념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하지만 보다시피 그의 머리 속에는 이미 수와 복의 형태가 없어진 지 오래며 또 왜 이것이 '수' 자이고 '복' 자인지 따지는 것도 부질없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장수와 복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며 '상상력'일 따름이다.

--------------------------------------------------------------------------------------

전에 한국민화전을 보려 갔을 때 '백수백복도'의 병풍을 봤어요.
글자 하나하나가 어찌가 근사하던지, 한참 그 앞에 머물러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