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문화

한국의 타이포 유산3 - 문자도

MissJaneMarple 2007. 3. 26. 14:37

  

 

           충(忠)자 문자도. 조선시대. 작자미상.

 

 

효(孝) · 제(悌) · 충(忠) · 신(信) · 예(禮) · 의(義) · 염(廉) · 치(恥)를 그린 8폭 문자도 병풍의 일부이다. 이 병풍은 글씨의 원래 모습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변형되어 있어, 이쯤 되면 글자보다 그림에 가깝다. 하긴 이 병풍을 놓았던 집주인에게야 제사나 잔치 분위기를 살려주면 그만이지 글이 무슨 의미가 있었으랴. 어쩌면 이것은 글을 읽지 못하는 서민들에게 유교 이념을 알기 쉽게 전달하기 위한 그림 도감 같은 것이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글자의 혜택에서 배제된 사람들이 권세높은 양반들의 고상한 문화의 일부를 가지기 위한 수단이었을 수도 있다.

효제충신 예의염치의 글씨 그림이 하도 많이 그려지다 보니 각각의 글자에는 고정된 고사나 상징이 관습적으로 사용되었다.

충(忠)자의 기둥인 대나무(알다시피 대나무는 지조를 상징한다.)를 감싸고 있는 입 구자(口)에 해당하는 것은 뱀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다리가 달린 새우이다. 왜 충자에 새우가 매달려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새우 하(蝦)의 발음이 군신이 화합한다는 뜻인 화(和)의 발음과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추측하는 사람들도 있다.

신(信)자는 한무제에게 서왕모가 온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는 파랑새라는 이도 있고, 한나라의 소무가 흉노에 억류되었을 때 그 사실을 조정에 알린 흰기러기라는 설도 있다. 어떤 새가 됐든 그러니까 사람 인 변에 앉은 새가 물고 있는 편지가 바로 믿음(信)을 나타내는 것이다.

치(恥)자의 마음(心) 한 가운데에는 주나라 무왕에 반기를 들고 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먹다 죽은 백이와 숙제의 비석 혹은 위패가 모셔져 있다. 여기에는 그 둘의 절개를 기리는 "백세청풍이제지비(百世淸風夷齊之碑)"라는 글귀를 새기기도 했다. (이 위패는 특히 병풍이 제사상 뒤에 놓일 때 절묘한 효과를 발휘한다.)

의(義)자는 건물 위에 한 쌍의 꿩이 앉은 모습을 하고 있다. 꿩이 하필이면 복숭아 나무 아래 앉은 이유는 유비 관우 장비가 도원(桃園)에서 결의를 했기 때문이다.

그림이 문자를 압도하는 듯한 이 글씨 그림은 서양 중세 필사본의 화려한 채식(彩飾) 머릿 글자를 연상하게도 한다. 하지만 적어도 추상(문자)과 구상(그림)의 완벽한 결합은 한자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원래 그림에서 유래한 문자인 한자는 자꾸 그림으로 돌아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