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문화

약연(藥硏)

MissJaneMarple 2007. 4. 17. 07:59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산과 들 주변에서 나는 재료들을 이용하여 병마(病魔)를 지혜롭게 이겨왔다. 이러한 약재(藥材)들을 빻아 가루로 만드는 기구에는 연석·맷돌·절구·유발·분쇄기 등 다양하나, 그 중에서도 배 모양에 가운데 홈이 파인 기구가 바로 약연(藥硏)이다.
약연은 신석기시대부터 곡식 등을 갈아먹는데 사용되던 기구인 갈돌에서 유래하였다고 볼 수 있는데, 처음 사용되던 때에는 가운데 파여진 홈이 그리 두드러지게 깊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이 수세기 동안 사용되면서 차츰 홈이 깊어져 지금과 비슷한 형태로 발전되어 온 것으로 보인다.

여기 소개하는 유물은 타원형의 몸체에 연알이 달린 자루가 얹어져 있는 나무 약연으로, 그 형태가 배의 모양을 고스란히 닮아있다. 이 배 모양의 약연 밑판에는 홈이 파여져 있고 그 위로 주판알 같이 생긴 연알이 얹어져 있는데, 그 가운데에 나무막대를 가로질러 이것을 자루로 잡고 앞뒤로 굴리면서 약재를 빻는 것이다. 약연은 나무·돌·무쇠로 만든 것이 대부분이며, 도자기·놋쇠·오지 등을 비롯하여, 간혹 값비싼 보석류인 은(銀)·옥(玉) 등으로 만들기도 하였다.

이러한 약연의 재질은 각각 가는 약재의 재료에 따라 용도를 달리하여 사용한다. 약연판 표면에는 그림을 새겨 장식한 것도 있다. 주로 십장생 등 장수(長壽)의 상징인 동물들이 주제였는데, 그림 이외에 유능제강(柔能制剛)·연년익수(延年益壽)·수복강녕(壽福康寧) 같은 글자를 새겨 넣어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였다. 또한 독극물용의 약연에는 구별이 될 수 있도록 독극약이라는 표시를 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요철형(凹凸形)의 약연은 음양(陰陽)의 이치를 담고 있는데, 받침부는 여성의 생식기나 대지를 뜻하며, 연알은 남성의 성기 또는 태양을 본뜬 것이다. 또한 진자(振子)의 원리를이용하여 움직이기 때문에 힘이 적게 드는 과학적 원리도 숨어있다. 이렇듯 약연은 그 모양과 원리가 과학적이면서도 자연 순응적인 기구이다. 음양(陰陽)의 원리로 자연의 산물인약재에 생기를 불어넣어 각종 병마를 이겨낸 우리조상들의 깊은지혜를 느낄 수 있는 물건인 것이다.

 

 

 

출처 : 민속소식 제139호 / 글_ 류재인 | 국립민속박물관 유물과학과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