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글읽기

뉴욕 에스키모, 미닉의 일생/ 켄 하퍼

MissJaneMarple 2007. 2. 27. 03:00

 

(켄 하퍼 지음/ 박종인 옮김/청어람미디어 펴냄)

원제목 Give me my father’s body.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알게 된 ‘백인’ 북극 탐험가 로버트 피어리. 어릴 때 그의 북극 탐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고난을 극복하고 북극까지 다녀온 대단한 인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린란드에 살고 있던 미닉과 그의 아버지 키수크 등 에스키모 6명은 1896년 8월 로버트 피어리의 손에 이끌려 뉴욕에 도착, 에스키모 연구를 위해 자연사박물관으로 넘겨진다. 사람들은  ‘야만’의 땅에서 ‘문명’ 세계에 온 이들의 행운을 얘기했지만 에스키모들은 행복하지 못했다. 피어리는 자신의 명성에 이들을 이용했을 뿐이고 뉴욕에 온 이후 이들을 돌보지 않았다. 에스키모들은 동물 취급을 당하다 수용되었던 자연사박물관 지하실에서 시름시름 앓다가 차례로 죽고 미닉만 남게 된다. 옮긴이 글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구체적인 순서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이러하다. 대통령 루스벨트기념관이 한 쪽에 있고, 그가 썼던 모자, 옷, 문방사우가 전시되어 있다. 전시관들은 지역별, 생물별로 분류되어 있다. 북미 원주민과, 폴리네시아 해양생물관, 폴리네시아 민속관, 동아시아 민속관, 중앙아시아 민속관, 광물관, 천체관 기타 등등.
이 박물관의 이름이 무엇이던가. ‘자연사’박물관이다. 자연이란 무엇인가. 유러피언의 역사를 제외한 모든 현상의 역사는 ‘자연사Natural History'라 정의된다. 박물관을 보면, 지구상에서 벌어졌고 벌어지는 모든 자연현상이 다 전시되어 있지만,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공간이 있으니 바로 유럽관이다. 백인 유러피언은 ’인류‘이고, 나머지는 ’자연‘이다. 박물관 이름이 자연사박물관이니, 어디에 대고 감히 유러피언의 역사를 자연사와 함께 전시하리오.>

옮긴이의 글을 읽으면서 동경에서 엑스포를 열었을 때 조선관을 만들어서 우리나라 사람들을

그 박스 안에 넣고 전시했다던 글이 생각났다. 그 글을 볼 때 어찌나 마음이 쓰리던지...

나중에 미닉은 자기가 본 아버지 키수스의 장례식이 가짜고 아버지의 시신은 인류학적 연구를 핑계로 살과 뼈가 발라진 채 박물관에 전시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버지의 시신을 돌려받지 못한 미닉은 그린란드로 돌아간다. 그러나 십년이 넘게 미국 생활을 한 탓에 그는 에스키모가 될 수 없었다. 어디에도 적응하지 못하고 떠돌던 미닉은 1918년 미국 피츠버그의 벌목촌에서 28세에 폐렴으로 죽는다.

이 책은 빠르게 진행되지 않는다. 오히려 느릿느릿 미닉의 일생을 따라간다.
영토팽창주의, 백인우월주의의 광풍 속에서 스러져간 한 영혼이 인간의 조건을 묻는 책,

Give me my father’s bod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