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와 대화를 하는 동안 행복이는 내내 주변에서 귀를 쫑긋 거리고 있었습니다. 작은마왕도 엄니도 참 신기했다고 말할 정도로 집중력을 보인거죠. 반야가 김동기님 가까이에서 대화를 했다고 하면 행복이는 좀 떨어진 곳에서 대화를 했습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행복이는 반야와 엉클어진 관계를 개선시키고 싶어 하고 반야도 그런 생각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행복이가 반야를 좋아하는 것도 아닙니다. 김동기님 말에 의하면 반야가 업둥이로 처음 집에 와서 지낼 때 야단치고 싶은 순간들이 있었지만 '내 새끼가 아니라서' 그럴 수 없었답니다.
허걱- 고양이도 자기 자식은 혼내지만 남의 아이는 마음대로 야단치지 않는구나...했습니다.
다시 반야가 돌아왔을 때는 이미 너무 커버려서 어쩔 수 없고.
행복이는 발과 꼬리 만지는 것을 유난히 싫어합니다. 목욕을 싫어해서 목욕시킬 때마다 난리가 나지만 특히 꼬리나 다리를 삼푸할 때면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습니다. 눈에 불을 켤 정도니까요.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요? 행복이는 아주 어렸을 때 왔으니까, 저희는 모르는 어떤 일 때문에 트라우마가 생긴 것은 아닐까요?
김동기님이 전한 말씀에 의하면 행복이는 만지면 전기가 오듯이 찌릿한 발이 하나 있답니다. 그런 발은 하나지만 그것 때문에 다른 발을 만지는 것도 싫다는 겁니다. 오....그렇군요.
김: 행복이를 처음 데려 왔을 때 사료를 주셨나요?
마플: 네.
김: 왜요? 우유를 주시지 않고 사료를 주셨나요?
마플: 분양하신 분이 사료를 주면 된다고 하셔서.....
행복이는 우유를 더 먹고 싶었고 사료는 먹고 싶지 않았답니다. 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너무나 작고 어린 행복이에게 딱딱한 사료만 주었으니...
오죽하면 엄니께서 사료를 손절구에 빻고 물에 불려서 주셨을까요. 제가 무지한 탓입니다. 반려동물을 키울 때는 공부도 하고 단계(연령)마다 반려동물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했는데.....
행복이에게 상처로 남은 것은 자기 아이들을 설명도 없이 다른 곳으로 보내버린 겁니다.
아이들과 더 있고 싶었는데 갑자기 사라진 아이들 때문에 슬펐다고....
너무 어린 행복이를 데려가도 된다는 말에 아무 준비도 없이 데려온 것, 설명도 없이 행복이의 아이들을 인간 마음대로 보내버린 것......
노랑이(운이), 연두를 보냈을 때 행복이는 그 아이들을 찾아다녔습니다. 집 구석구석을 돌아다녔지요.
인간이 죄가 많습니다. 미안하고 짠하고....
행복이에게 미안하다고, 네게 말을 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거 정말 미안하다고....했습니다.
행복이는 할아버지(돌아가신 아버지)께 하던 행동이 있습니다. 쇼파 끝에 앉아서 안방으로 들어가시는 할아버지를 툭툭- 치는 장난입니다. 그러면 아버지는 행복이와 마주 보고 같이 장난을 하시며 웃곤 하셨습니다. 종종 다른 식구들에게도 그런 장난을 했지만 그 대상은 주로 아버지였습니다. 할아버지께서 계시지 않는 지금 행복이는 그 장난을 다른 식구들에게 한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 행복이도 할아버지가 계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거겠지요. 그런 행복이를 보며 할머니(어머니)는 “할아버지 어디 계시냐, 행복아! 너는 아니?”라는 말을 하셨더랬습니다. 할머니께 행복이의 존재가 큰 위안이 되고 기쁨이 된다고 전해주세요. 정말 고맙다고.
행복이도 알고 있답니다. 할아버지께서 계시지 않아서 많이 슬프고.
돌아가셨을 때 행복이도 같이 다니고 싶었는데(아마 장례식장이나 49재를 지내는 곳 등) 그럴 수 없었고, 어떤 상황이라고 말이라도 해주었으면 했었다고.
김: 할아버지 물건을 다 치우지 않으셨으면 하나 꺼내서 행복이에게 주시지요.
그래서 아버지 골프 가방에 달려 있던 이름표를 가지고 와 행복이게 내밀었던 한참 냄새를 맡았습니다. 그 이름표는 오늘도 안방 침대 위에 있습니다.
김: 행복이가 침대 어디에서 자나요?
엄니: 제 발 밑에서 주로 자고 그 양반(아버지)가 주시던 쪽 발 아래서 자는 경우가 많지요.
종종 옆에서도 자고...
김: 그런데 바짝 붙어서 자지는 않지요? 뭐라고 할까 어느 정도 간격을 둔다고나 할까 그렇지요?
엄니: 네 맞아요.
김동기님에 의하면 행복이 나름대로 그게 예의(혹은 배려)라고 생각한답니다. 할아버지 자리는 꼭 비워둔다는 거죠. 그 말을 듣고 생각하니 엄니 옆자리가 비었는데도 행복이가 그 자리에 눕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엄니 발 아래에 있거나 마치 아버지가 누워 계시는 것처럼 그만큼을 비워두고 발 아래 쪽에서 잠이 듭니다. 간혹 엄니 옆에서 잠을 자도 침대 끝 쪽에 자리를 잡습니다.
참 놀라운 말이었습니다. 사람보다 낫구나.
김동기님도 행복이가 속이 깊은 아이라고 하셨습니다. 까칠한 행복이에게 이런 마음이 있는지 우리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으니까요. 김동기님은 나중에 산소에 갈 때 행복이를 한번 데리고 가라고 하시더군요. 우리들은 기꺼이 그렇게 할 생각입니다.
김동기님은 반야와 행복이가 싸우면 반야만 야단치지 말고 (주로 반야가 덤비니까 야단 맞는 경우가 대부분) 행복이와 반야를 같이 야단치라고 합니다. 형제가 싸웠을 때 형이 잘못했는데 형에게 대든다고 동생이 혼나는 경우도 있고, 동생이 잘못했는데 형이 참지도 못한다고 혼나는 경우는 서운한 감정이 쌓이므로 싸운 형제를 모두 벌서게 하면 둘 사이엔 동질감이 생긴다. 그런 것처럼 반야와 행복이도 어느 한 아이만 혼내지 말고 두 녀석 모두 야단치라고...
그렇게 말하던 김동기님이 "오우- 행복이가 저를 째려보는걸요. 왜 나를?...하면서요."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바라본 행복이는 눈이 옆으로 돌아가 있었습니다. 하하하하.....
행복아, 행복이에게도 엄마가 미안한 게 많네. 잘 토닥이며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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